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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기억 (Media Memory)

[제24전시] "치이익-" 솜털이 곤두서던 정전기의 인사 : 브라운관(CRT) TV

by 기록자 수(The Archivist) 2026.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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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거실에서 켜진 빈티지 브라운관 TV 화면에 손을 대고 정전기를 느끼는 모습"

 

거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던 뚱뚱한 텔레비전을 기억하시나요? 리모컨보다는 직접 다가가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게 더 익숙했던 그 시절.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바로 켜지는 요즘 TV와 달리, 그 시절의 TV는 뜸을 들이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박물관의 스물네 번째 전시물은 ‘전자를 쏘아 빛을 만들던 육중한 유리 상자, 브라운관(CRT) TV의 소리’입니다. 전원을 켤 때 나던 미세한 고주파음, 화면 표면을 쓸면 손끝에서 느껴지던 "치이익, 탁탁" 하는 정전기 소리, 그리고 화면을 끌 때 가운데로 빛이 모여들며 사라지던 잔상까지. 그것은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와 마주하는 듯한 경험이었습니다.

 

"웅-" 하며 예열되던 진공의 시간

전원 버튼을 '철컥' 하고 누르면 곧바로 화면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웅-" 하는 낮은 울림과 함께 브라운관 뒤쪽의 전자총이 예열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주 예민한 귀를 가진 사람들은 "삐-" 하는 15kHz 대역의 고주파 소음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 기다림 끝에 서서히 밝아지며 상이 맺히던 화면은 마치 무대 위의 막이 오르는 것 같은 설렘을 주었습니다.

 

손바닥으로 느끼는 소리, 정전기

브라운관 TV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화면 표면에 흐르던 정전기였습니다. TV를 켜고 화면 가까이 얼굴을 대거나 팔을 스치면 솜털이 쭈뼛 서며 "지직-"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바닥으로 화면을 쓸어내리면 "타닥타닥" 하며 작은 불꽃이 튀는 듯한 소리가 났죠. 그것은 시각 정보가 쏟아지기 전, 촉각과 청각으로 먼저 만나는 미디어의 질감이었습니다.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잃어버린 '온기'

지금의 LED, OLED TV는 얇고 선명하며 차갑습니다. 전원을 켜면 0.1초 만에 완벽한 블랙과 화려한 색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브라운관 TV가 주던 그 두툼한 부피감과 열기, 그리고 화면을 끄고 나서도 한동안 "틱, 틱" 하며 플라스틱이 식어가던 소리는 없습니다.

디지털 화면은 정보의 전달자 역할에 충실하지만, 아날로그 TV는 공간의 온도를 높여주던 가구이자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들게 만드는 구심점이었습니다. 완벽하고 매끈한 화면 뒤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함께 기다리는 시간'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론: 빛이 점으로 사라지던 순간

방송이 끝나고 애국가마저 흘러나간 뒤, TV를 끄면 화면의 모든 빛이 중앙의 작은 점 하나로 모여들었다가 "핑-" 하며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 잔광을 보며 우리는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텔레비전조차 잠드는 시간이 있었던 시절. 24시간 꺼지지 않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지금, 가끔은 그 완벽한 휴식의 소멸이 그리워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TV를 켤 때 "텅~" 하는 큰 소리가 났던 이유는 뭔가요?
A. '디가우싱(Degaussing)' 기능 때문입니다. 지구 자기장 등으로 인해 화면 색이 얼룩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순간적으로 강력한 전류를 흘려 자기를 제거할 때 나는 소리입니다.

Q. 왜 TV를 때리면 화면이 잘 나왔나요?
A. 내부 부품의 납땜이 노후화되어 접촉 불량이 생긴 경우, 충격을 주면 일시적으로 접촉이 되면서 화면이 나오곤 했습니다. 일종의 민간요법이었죠.

Q. 브라운관 TV 소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물리적인 반응'입니다. 전기가 들어오고, 열이 나고, 유리가 울리는 소리들은 영상이 단순히 데이터가 아니라 물리적인 현상임을 느끼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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